제가 이제껏 생각했던 '겸손'은, '나를 낮추고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거만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찮고 어리석은 꾀를 내어, 제가 알코올에 무력했다기보다 '시도때도 없이 술을 급하게 많이 마셨으니 술 앞에 장사없다고, 아무데서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그럴 수 있다'(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당시에 숨어서 빨리 술을 마시느라 640ml 소주 두병을 3분정도에 해치웠습니다)며, '앞으로는 "겸손하게(?)" 음주를 하면 괜찮겠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의 무능력과 약함을 인정할 때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면 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고백하건데, 어쩌면 저는 12단계 중 제1단계조차 올바르지 못하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애플스토어에 가서 갤럭시를 내미는 것처럼, 국수를 먹는데 스푼을 쥐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에서 " '겸손'이란, 인간이 자기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겸손은 제가 사랑하던 음주를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된다는 현실의 무기력함을 가혹하게 느끼는 슬픔이자 괴로움이었습니다. 사랑하면서 사랑인줄 모르는 것처럼, 겸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술앞에 무력하기만 하다는 자각이, 이제는 술과 안녕하고 단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자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진실로 겸손하게 되어서 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는 회복할 수 없다는 편견과 그럴듯하게 단주에 열심인 것처럼 꾸미고자 하는 허영과, 나는 남들과 다르고 조절음주를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겸손'은 자세나 태도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저에게는 단주와 더불어 살아가야할 뚜렷한 이유와 목표가 있습니다. 저는 더이상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 과거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과거에 살지 않겠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으며, 순탄치만은 않을 회복으로의 길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져도 전심전력으로! 위선이나 가식이 아닌 진정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과 간절히 소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그 말을!! 저는 눈물겹도록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겸손'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새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나친 겸손은 위험하며, 긍정적 자만심도 절망으로 바닥을 쳐야 한다는, 즉 자만심에서 절망으로 오고 가기를 반복해야만 비로소 균형잡힌 겸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제 자신을 일깨우고,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간곡히 호소하고픈 소중하고 굳건한 의지의 메시지는,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을 앎과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강함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디 저의 이 메시지가 우리의 온전한 단주생활을 갈망하는 절실한 '피와 땀'에 깊이 스며들기를, 위대하신 힘께 간구드립니다.